“부흥: 믿음의 담대함으로” (고후 5:16-21) 033119
할렐루야! 우리의 감사와 영광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요즈음 뉴스를 보면 마음이 많이 답답해 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특히 많은 정치적 지도자들의 삶이 “부정부패”로 물들고 “정직함’이 사라져 스스로 사직을 하던가 민중의 지탄을 받는 모습들이 너무도 자주 보여지고 있습니다. “Honesty is the best policy 정직은 최고의 정책이다”하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삶의 주변에 “정직함”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 정직함의 회복이 어찌 생각하면 진정한 “부흥”의 의미가 아닐까합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부흥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교인이 늘어났다는 것? 교회 재정이 많아졌다는 것? 더욱 크고 보기 좋은 교회 건물을 짓는 것? 과연 이러한 것들이 진정한 “부흥”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일까요? 부흥을 영어로는 보통 Revival/Revitalization이라고 합니다. 영어 사전에는 그 정의가 “to give new life to, to give vitality to 누구(?)에게 생명/생명력을 주다”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흥”의 의미는 오늘 본문 16-17절의 말씀으로 정리 할 수 있겠습니다. “진정한 부흥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이전의 삶의 모습은 모두 보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과 생명력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 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에서 “필요불가결”한 절대적인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의 존재함과 우리 삶의 시작과 나중, 그리고 영원의 삶까지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진정한 의미의 “부흥”이 지속성 continuation이 있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삶은 “믿음의 경주”입니다. 우리의 일생은 빌립보서 3장 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하신 바울 사도의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창조의 주이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는 우리 매일 매일의 삶에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매일 매일의 새로운 창조하심의 역사 가운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지는 부흥의 역사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어집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참된 “부흥”은 과연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첫째로, 참다운 부흥은 “오로지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 1장 12절 부터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하늘 승천 후에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락방에 모여 백이십 여명이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고 기록되었으며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였을 때에 그들 모두에게 “부흥”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에게 부흥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과 생명의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그 한 예로 신앙의 비겁자였고 배신자였던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였을 때 그 말씀과 세례를 받은 신도의 수가 삼천이 더하여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Chicago에서 집회를 인도하던 유명한 부흥사 무디에게 “교회 부흥의 비결이 무엇인가” 묻자 그는 대답하기를, “매일 5 분씩 전심으로 기도하는 성도 20명만 있으면 됩니다”라고 했답니다. “하루에 5분씩 전심으로 기도하는 성도 20명…” 딱 우리 교회네요.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새로운 부흥을 허락하실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참다운 부흥은 진정한 “회개”로 이루어집니다. 진정한 “회개”는 우리가 정직한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으로 인하여 우리 마음에 찔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직함을 찾아 보기 어려운 이 세대에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정직하게 비추어 볼 수 있어야 하며 그로 인하여 마음의 참회와 통회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 성경 공부에서 칭의 은혜에 관한 말씀 가운데 “If we are to be found, we must first see that we are lost.” 우리가 길 잃은 양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서도,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하십니다. 회개하고 애통하며 참회함으로 용서와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부흥”입니다.
셋째로, 참다운 부흥은 새로운 예배의 갱신으로 이루어집니다. 날로 새로와지는 참된 예배자로서의 자세를 말합니다.
히브리서 13장 15, 16절에,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릴 때 우리에게 부흥이 임합니다. 억지로 또 의무적으로 드리는 제사가 아닌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는 제사, 즉 예배를 드릴 때에 부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잘 표현한 찬송이 있습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입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에서는 오직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오로지 기도”에 전념할 때 부흥은 이루어집니다. 어떠한 삶의 상황에서도, 깨어진 관계에 화목을, 망가진 육신에 치유를,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고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에 주신 새로운 생명의 부흥을 주십니다.
· 우리가 정직한 영으로 자신을 돌아 보고 회개하고 참회할 때에 주 보혈의 능력으로 용서하시고 구원하시어 우리 속사람에게 샘 솟는 기쁨의 부흥을 주십니다.
·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나올 때 마다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의 참다운 예배자의 자세가 날로 새로와 짐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의 역사하심을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