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 (사 55:1-9) 032419
오늘도 우리를 변함 없이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들 모두를 환영합니다.
며칠 전 새벽 예배 설교 제목이 “담대히 하나님 앞으로, 그리고 이웃과 더불어” 였습니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예수님을 세상의 모든 죄를 용서 하시고 구원하시려고 보내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다 이루심”을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거룩한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그 담대한 믿음으로 이웃과 함께 더불어 “모이기에 힘쓰고, 모이면 참된 예배와 서로를 돌아 보고 위로하며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리를 행하는 것입니다.
지난 번 교회 여러분들이 함께 “Visioning & Planning”으로 모였을 때 이번 사순절 동안에 “우리의 이웃은 누구인가?”라는 주제를 다루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 1부 예배에는 우리 교회 학교 디렠터와 선생님들이 함께 예배 드리며 우리가 과연 “이웃”이라고 할 만한 관계인지 아니면 그저 교회 건물을 나누어 쓰는 낯선자들인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Paterson에 있는 CUMAC(Center of United Methodist Aid to the Community)이라는 선교 기관에 대하여 잠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얼마 멀지 않은 이 기관은 패터슨 시에 거주하는 수 천의 저소득 혹은 무소득 가구들에게 무상으로 음식을 제공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21명의 고용된 Staff들과 100여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한 달에 2,500여 가구와 2,000여명의 사람들에게 많은 기관들과 정부의 보조를 받아 일년 열 두달 물과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도 연회의 모든 교회와 합력하여 여러 해 동안 재정적으로 또 물질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그 사역의 수혜자들 중 3명당 1명은 어린 아이이고, 6명 중 1명은 지체 부자유자이며, 8명 중 1명은 나이 많은 노인이라고합니다. 그들의 삶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어떻게 하면 다음 끼니를 굶지 않고 때울 수 있는가”라는 슬픈 현실을 매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목마르고 배고픈 인생을 언제까지 살아야 할지 모르면서 하루하루 연명해 나가는 우리의 이웃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며 특히 매달 네번째 주일에 음식을 모으는 사역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사야서 제 2부의 마지막 장으로 주전 545-539년경에 쓰여졌으며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환과 민족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백성이 가진 것 모두 빼앗기고 나라를 잃은 슬픔과 가족도 뿔뿔이 흩어져 생사도 알 수 없는 세월을 살아가며 무슨 낙이 있었겠나요? 육신적인 목마름과 배고픔도 절실했겠지만 그들이 영적으로 메말라 가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잃어 가고 있었던 그 시기에 오늘의 말씀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목마른 자도. 배고픈 자도, 돈 없는 자도 와서 먹고 마실 것을 그저 사다 먹고 마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에 필요한 먹고 마실 것을 돈 낼 걱정 말고 “와서 Come” “먹고 즐기고 살아라”하십니다. 아마도 이 말씀을 커다란 광고판에 새기어 패터슨 시내에 내 건다면 얼마나 많은 굶주리고 배고픈 사람들이 모일까요?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목마름과 배고픔을 채워 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나아 오라 Come”고 하시며 세 가지를 명령하십니다: Come and buy 와서 사라. Come and listen와서 들으라. Come and seek 와서 찾으라.
첫째로, Come and buy와서 사라. 오늘 본문 말씀 1절에,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값없이 와서 사라”고 말씀하십니다. 2절 말씀을 보니 그들에게 돈이 없는 이유가 “양식이 아닌 잘못된 것에 돈을 낭비하고 정작 필요한 것을 채워 주지 못하는 일들에 헛수고만 하기 때문”이라고합니다.
이 말씀에서 “돈”은 우리의 시간, 힘과 능력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면서 왜 이렇게 영적으로 목마름을 느끼는지 자신을 다시 돌이켜 살펴 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목마름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산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마음이 공허하고 영적으로 무언가가 채워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Come”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채워주시기를 원하시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값을 다 치루셨기에 “값 없이 와서 사라”고하십니다.
야곱의 우물에 간절한 목마름을 가지고 나아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님은 요한 복음 4장 13-14절에,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게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하십니다. (찬송 526)
둘째로, Come and listen 와서 들으라. (2b-3a 읽음)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 무엇을 들어야합니까? 영어 성경에 보니 “everlasting covenant” 즉, 하나님의 영원하신 약속을 들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얼마나 마음 문을 열고, 얼마나 열심으로, 얼마나 자주, 얼마나 간절히 듣는가 자신의 말씀에 대한 자세를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하신 그 언약을 말합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 말씀을 들음으로 얻어지는 믿음에서 시작한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아멘!
셋째로, Come and seek 와서 찾으라. 오늘 본문 6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신다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인데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그를 찾지 않기에 세상에서 어려운 고난과 고통, 특히 목마름과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지쳐서 쓰러질 때가 많은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 29: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보라” à 사순절 기간 동안에 주님 가신 그 고난의 길에 동참하며 영혼의 목마름과 갈망함을 더 참고 견디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오십시요. 나와서 거저 먹고 마시고, 나와사 생명의 약속인 하나님의 말씀들으시고, 우리의 삶의 모든 상황에 함께하시며 풍성하게 채우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원하신 언약의 축복이 끊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된 삶을 매일 매일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