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사랑의 향기를” (요 12:1-8) 040719
할렐루야!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시요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믿음의 삶”에 관한 교훈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태복음 26장 6-13절, 마가복음 14장 3-9절, 그리고 누구복음 7장 36-50절에 있습니다. 그 지명이나 인명 등 이야기의 자세한 내용들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사복음서 모두가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메시야 (Anointed One)로 오시어 당하실 죽음과 그 죽음을 준비하기 위하여 향유로 기름 부음 (Being anointed)을 받았다는 주제는 동일합니다.
오늘의 본문에 등장하는 마리아 혹은 죄 많은 여인을 통하여 주님께 드려지는 최고의 사랑의 향기가 나는 산제물을 드리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배울 수 있는 말씀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2장 1절의 “유월절 엿새 전에”라는 시작이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이루어지는 서막을 예고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어 표현으로 “Count Down”이라고 하지요?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려는 사명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행하시는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얼마전에 죽음에서 건져진 나사로의 가족은 은혜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역시 그녀다웁게 열심히 음식을 장만하고 “일을 하고”있습니다. 나사로는 아마도 예수님이 즐겨하시는 “말씀”을 듣느라 “함께 앉은 자들 중에 있더라”고 합니다. 그 때에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A Love Story) 인가요? 각자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은혜를 입은 예수님께 사랑의 표현을 하는 만큼 아름다운 모습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이 가룟 유다입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그는 정말 가난한 자를 위하여 한 말이 아니라 자기의 욕심과 주머니를 채우려고 하는 의도에서 마리아를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향유가 얼마나 비싼 것이었나요? 평범한 노동자의 1년 봉급과 맞먹는 300 데나리온이라고합니다. 아무리 감사의 마음과 사랑의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비싼 향유를 다른 사람의 발에 부을 수 있을까요? 심지어 그 일부분은 땅에 흘렀을 수 도 있는데 말입니다. 정말 “쓸데 없는 낭비”라고 생각 할 만합니다. 가룟 유다 아닌 다른 사람이라도 마리아를 나무랄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즉각적으로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7장 47절에서는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고 하십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간단히 “사랑의 이야기 A Love Story”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는 사랑 (Love of Giving), 받는 사랑 (Love of Receiving), 그리고 나누는 사랑(Love of Sharing)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첫번째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주는 사랑”입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있다”고 하지요? 마리아는 예수님께로 부터 받은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여 그녀가 가진 것의 최고로 좋은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단지 비싼 것이기에 최고로 좋은 선물이 아닌, 마음에 간직한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관점”으로 가장 최고의 가치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물질을 드림에 있어 나의 가진 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앞설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써야 할 것을 먼저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마음 속에 그저 남들 보기에 창피 당하지 않을 정도로 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양이 어느정도인가를 계수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믿음과 사랑한다고 하는 사랑의 관점으로 내가 드릴 수 있는 최선과 최고의 “사랑의 향내”가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며 드리는 “사랑의 드림”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드림이 특히 주변의 경제적인 상황이 어려울 때 더 힘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마리아와 같은 “사랑의 드림”을 실천해 보시고 하나님이 과연 받고만 계시는가 한번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봉헌물을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하십니다.
둘째로, 우리는 사랑을 온전히 받을 줄도 알아야합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예수님은 마리아의 “넘치는 사랑”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받으시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완전한 신이시며 완전한 인간으로 세상에 오시어 이제 인간의 욱신을 내어 주심으로 죽음을 맞이하시기 직전에 한 여인이 은혜에 감사하는 사랑의 드림을 기꺼이 받으신 것입니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 (Give and Take)이라”고 했나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특히 믿음의 공동체의 삶을 통하여 전해지는 사랑에 마음이 열려 있어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섬김과 헌신의 삶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그저 “왔다리 갔다리” 하다 보면 그 공동체에서 받을 수 있는 많은 사랑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의 삶을 통해서도 예수님께서 주시고자하는 사랑과 은혜가 우리에게 전해 지기도합니다. 그러한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하며 그러한 교회를 통하여 받는 사랑의 기쁨과 행복이 우리의 삶에 풍성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셌째로, “나눔의 사랑”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주고 받는 사랑”의 총체적인 모습이 “사랑의 나눔”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독교는 한 마디로 “나눔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을 나누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나누고, 우리의 가진 재능과 은사를 나누고, 물질까지도 드리고 나누며 가는 평생의 신앙의 여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웃의 삶을 부요하게 도울 때 우리의 삶도 부요해질 수 있고, 우리가 그들에게 복을 주려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복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항상” “돌보고, 보살피고, 나누며 살라”는 말씀이기도합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드림과, 온전한 받음과 나눔으로 “주님께 사랑의 향기”를 항상 변함 없이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의 신실한 삶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